왜 시골이 뜨거워지고 있을까?

로컬 지향의 시대 (마을이 우리를 구한다)
마쓰나가 게이코 지음, 이혁재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기본적으로 운송 네트워크와 인터넷 통신의 발달은 지역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고립성을 탈피시켰으며, 상대적으로 낮은 부동산 가격과 자연환경도 사람들을 유인하며 지역이 다시 부활하는 인프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일과 삶의 균형,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인정, 정해진 범위내에서의 작은 공헌에 대한 욕구를 이루기 위해 지역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지역도 탐미적 풍경 뿐만 아니라 개성찾기를 통해 생활적 풍경을 만들어 내며 지역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산업화 시대의 사람들과 일의 개념이 틀린 현대적 농민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지역 속에서 현대적 농민들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자금을 모집하고,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유통하며, 사롱과 SNS를 통해 가치를 전파합니다. 복수의 일을 가지고 보수보다는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합니다.

 

균형, 사람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슬로우 라이프를 즐기면서 사회성과 사업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복수의 일을 하고자 합니다. 직업이 있으면서 그것만을 전업(분업화, 전문화)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직업과 관련된 다른 일이나 지역 커뮤니티, 자원봉사 분야에서 활동하고자 합니다. 이들은 수입은 그리 많지 않더라도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길 선호하고, 하고 싶은 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추구합니다. 이들의 일하는 시간은 자유자재이고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으며, 일과 여가의 구분도 없습니다. 현대적 농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정, SNS등 사회적 교류를 통해서 사회속에서 자신이 찾은 삶과 일의 의미를 느슨하게 뭉쳐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이들이 만들어 낸 상점가는 물건을 파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대화하고 즐기는 살롱(salon)같은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유지되어온 시장이 상품의 교환과 더불어 얼굴을 마주 대하는 대면의 장소, 즉 서로 주고받는 호혜성이 이뤄지는 장소였던 것 처럼 경제활동이 신뢰관계를 보장하고 가게가 아닌 살롱적 요소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 앞에 새로운 발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낙관적인 확신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발견한 가치를 전파합니다.

공헌, 얼굴을 대하고 사는 범위 내에서 평범한 삶을 누리고 작지만 의미있는 공헌을 하고자 합니다. 지역에 뿌리내린 산업이 정체에 빠지고 마을의 개성은 사라지는 가운데 두가지를 모두 되살리려는 지역의 노력에 작지만 의미있는 공헌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새로운 발상을 통해 새로운 개념과 작품, 기술을 만들어 내는 크리에이티브 클래스가 선도적으로 지역에 진입하고,  지역의 디자인을 향한 열정과 장인의 수작업이 연결돼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젊은이들을 빨아 들이고 있습니다.

전통적 제조업은 성장을 지속하며 1단계 산업집적 형성기, 2단계 지방이전기, 3단계 해외이전기에 의한 산업공동화와 같은 변화를 겪어오고 있습니다. 지역에 뿌린 내린 산업이 정체에 빠지고 마을의 개성이 사라지면 지역은 탐미적 경관만이 남게 됩니다. 위기에 처한 지역에서 해당 장소가 가지는 시대성과 사회성에 기반한 개성찾기를 통해서 지역산업을 만들어 내면 여행자가 생활자의 생활적 경관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생활도 풍경이 됩니다. 이제 지역의 담당자들은 땀 흘려가며 죽어라 기업을 유치하고 지역 특산품을 제조하던 시대에서 풍요로운 라이프스타일과 매력적인 관광 요소를 전국에 알려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익명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도시, 개인도 하나의 일을 가지고 획일적인 공간에 나누어 사는 도시. 그 도시를 떠나 균형과 의미를 찾고, 지역에 공헌하고 싶어하는 현대적 농민들을 끌어 들여야 합니다.

 

하루 15분 참선

최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지쳐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니 신경써야 할 일도 많고, 때론 이런 나를 몰라주는 그리고 가끔씩은 배신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실망도 하고 화도 납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현재의 삶과 단절을 하고 싶어 ‘월정사 출가학교 가기, 볼리테르 테니스 학교 1달 레슨 받기’와 같은 버켓리스트를 적어 보기도 합니다.

지난달 우연히 남양주 봉선사에 들러 스님과 차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고, 스님께서는 인생은 고통이고, 고통을 이겨내는 답을 찾아가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라고 하셨습니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휴식과 참선을 통해 마음을 돌아보고 다스릴 줄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며 혜거 스님의 ‘하루 15분 참선’이라는 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아래는 책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인류유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70세 이상의 노인 1,000명을 대상으로 5년 동안 ‘인생의 지혜’에 대해 조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가장 최고의 지혜는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였습니다. 노인들은 상대방을 변화시키려고 애썼던 자신들의 노력이 얼마나 덧없고 어리석은 것이였는지에 대해 이야기 했고,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마음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상대방을 변화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갈등이 있을 때마다 그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고통에 힘들어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등 상황에서 자기는 전혀 변할 생각이 없으면서 상대방이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개인적 차원에서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후회를 하곤 합니다. 분명 내 몸에 붙어 있는 입이고 팔인데 그것을 다스리지 못해 후회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리고 후회할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습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멈추어야 합니다. ‘매일 조용한 곳에 홀로 편안히 앉아 참된 나의 마음을 만나는 휴식과 참선’이 우리의 마음을 관찰하기 위해 멈추어 서는 것입니다. 세상사에 시달린 사람의 마음은 마구 분탕질해져 있는 연못의 흙탕물과 같아서 멈추어서 조용히 기다려야 합니다. 흙탕물이 가라앉아 연못이 맑아지면 연못 속의 구슬, 우리의 마음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참선의 자세

누운 자세는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편안히 누워서 ‘당신의 몸은 무척 편안합니다. 당신은 아주 편안히 누워있고, 당신의 몸은 점점 편안해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몸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고, 점점 따뜻해집니다’하면서 몸을 이완시킵니다.

앉은 자세는 부처님 자세인 결가부좌 또는 한쪽 발을 위로 올리는 반가부좌 자세를 취하참선자세면 됩니다. 방석을 반으로 접어 두꺼운 부분에 엉덩이를 놓으면 곧은 자세를 편하게 오래유지할 수 있습니다. 손은 가리런히 포개어 다리 중앙에 가볍게 올려 놓고 양손 엄지 손가락이 맞닿게 양손을 겹쳐 동그랗게 만들면 됩니다. 오른발이 위에 있으면 오른손이 위로 왼손이 아래로 가면 됩니다. 어떠한 자세에서도 힘을 빼고 근육을 이완시키면서 온하한 표정과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며, 참선 도중 발을 바꾸거나 할 때에도 천천히 조용히 하여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게 합니다. 참선을 할 때는 절대 눈을 감아서는 안됩니다. 눈을 감으면 졸음이 오고 온갖 잡념에 빠지게 됩니다.  호흡은 복식호흡을 하면서 여섯을 세면서 내쉬고, 여섯을 세면서 들이 마십니다.

집중표팔을 최대한 앞으로 뻗은 지점에서 약 10센티미터 앞에 집중표를 두고 시선을 고정시키고, 시선이 고정된 그곳에 마음을 고정시킨다면 한가지 생각을 깊게하는 사유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마음이 가라앉고 고요히 사유하다 한가지 대상에 집중하여 몰입된 상태를 선정이라고 합니다.   참된 나를 발견한 사람은 항상 나누고 낮추고 배우면서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도 고통이 없고, 원망 가운데 있으면서도 원망이 없으며, 탐욕 가운데 있으면서도 탐욕이 없고, 성남 가운데 있으면서도 성냄이 없습니다.

참선을 하게되면 깊은 호흡을 하게되어 평상시보다 많은 산소를 몸속에 유입하는 반면 몸은 가만히 앉아 있기 때문에 산소 소비량은 줄어듭니다. 따라서 여분의 산소는 혈관을 따라 뇌 속으로 전달되고, 뇌가 활성화되어 잡념들이 일어 납니다. 당연한 과정으로 일어난 생각을 알아 차리고 잡념에 머물러 끌려가지 않도록 깨어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선하는 동안 몇가지 잡념이 떠 올랐는지 세어 보세요! 문제는 떠오르는 잡념이 아니라 그러한 생각에 붙잡혀 들어가는 것입니다.일상 생활에서도 생각들을 흘려 보내세요! 누군가 나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면 ‘이 사람이 좀 불 친절하구나!’라고 생각하고 그 이상 생각을 발전시키지 않는 연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문에 짜증을 내고, 긴장을 하고, 화가 나고, 화를 내서 자신의 감정까지 다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사건이나 사실에 대해 일체 판단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도 필요합니다. 선과 악, 좋고 그름, 미워하고 좋아함 등과 같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연결하여 끊임없이 판한하는 망념과 분별심을 다스려야 합니다. 무릇 무엇이든 본래부터 선과 악, 좋은 것과 나쁜 것, 미워하고 좋아함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시각에 따라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을 뿐입니다.

참선을 하면서 먹는 것(조식), 자는 것(조면), 동작(조신), 마음(조심), 호흡(조식)을 조절하면서 부다부소(많지도 적지도 않은)의 마음으로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치우쳐 균형이 깨지면 몸과 마음이 피곤해지고 짜증, 긴장, 화남, 화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경우 “상황과 사람에 대한 통제라는 자기 집착”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황과 사람이 통제되지 않으면 짜증이 나고, 긴장되며, 화를 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통제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생각을 흘려 보내기 위해서는 이타심과 자비심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변하지 않는 다른 사람이 제 그림에 들어와 주기를 바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묵묵히 제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감각적 쾌락도, 고행으로도 일관하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의 삶은 중용이라는 지혜를 새기고 살아야 한다고 혜거 스님은 말씀하십니다. 늘 깨어있으면서, 화합하되 휩쓸리지 않는(화이불류) 중용의 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